유봉규 대표, “KDY는 꾸준한 열정이 빚은 신뢰의 상징”
신용으로 구축한 성장발판 이제는 국내가 좁다
사업체를 경영하는 사람에게 있어 ‘신용’이라는 두 글자가 갖는 무게는 그 어느 것 보다 무겁다. 반드시 지켜야 한다고 생각하지만 지키기가 어려운 것이 바로 신용이다. 기술력의 경우 그 회사의 역량이라 파악할 수 있지만 신용은 ‘신뢰’나 ‘신의’를 넘어 상대를 대하는 ‘태도’로 비쳐질 수 있기에 좀처럼 얻기 힘든 소중한 자산이기도 하다. KDY는 기술력과 함께 신용을 전면에 내세우며 국내 시장의 힘겨운 상황을 견뎌냈다. 그 결과 굴지의 글로벌 제조그룹에게 당당하게 인정받는 파트너로서 입지를 다지게 됐다.
취재 | 임성윤 기자(Printingtrend@gmail.com)
KDY의 전신, 두레기계
KDY는 제본기의 모듈인 제책기를 만드는 회사로 글로벌 제본기 메이커인 요시노의 한국 파트너다. KDY를 설명하려면 먼저 유봉규 대표와 두레기계를 언급해야 한다. 현 KDY를 존재하게 한 장본인이자 전신으로 영세했던 회사를 글로벌 메이커의 파트너로 성장하게 한 발판이기 때문이다. 유봉규 대표는 엔지니어로만 35년의 외길을 걸어온 국내 제조기술의 산 증인이다. 그리고 유봉규 대표가 10여년간 몸 담아온 회사가 바로 두레기계다.
약 12년 전, 유봉규 대표는 국내의 한 제본기 제조사와 인연을 맺고 제본기 관련 기술에 눈을 떴다. 2년여의 시간 동안 차분하게 관련 기술을 연마했고 이 중 제책기 기술을 특화시키고자 두레기계를 탄생시켰다. 기계와 관련한 오랜 노하우과 특화된 기술력, 그리고 시장의 수요를 파악한 시각이 독립된 성공을 꿈꾸게 했다. 직접 제책기를 만들겠다는 야심을 가진 유봉규 대표였지만 치열한 경쟁사회에서 살아남기는 쉽지 않았다. 오랜 시간 갈고 닦은 기술력도, 차별화된 아이디어도, 경쟁업체와는 다른 세심한 배려도 두레기계의 업력이 일천하다는 이유로 정당한 평가를 받지 못했다. 신생업체의 한계라고 할 수도 있겠지만 과연 제대로 된 기계를 만들어 낼 수 있을 것인가에 대한 믿음을 주지 못했기 때문이다. 신용이라는 두 글자는 흔하게 듣고 수시로 접할 수 있는 단어이지만 이처럼 얻기 힘든 자산이라는 것을 유봉규 대표는 이 때 깨달았다.
유봉규 대표는 이러한 위기를 이겨내기 위한 방법으로 선택과 집중을 택했다.
작은 회사였기에 싸고 질 좋은 제품을 만들어 내려 노력했고 최대한 고객사의 입장에 맞는 제품을 만들어내려 했다. 두레기계가 어느 정도의 신뢰를 쌓기까지는 6년여의 시간이 걸렸다. 이 시간 동안 어려움도 많았지만 얻은 것역시 많았다.
국내 시장에 대한 보다 정확한 분석도 그 중 하나다. 국내에서 제책기를 사용하려는 업체들 중 대다수가 원하는 것은 싸고 질 좋은 제품이다. 즉 가격은 저렴하면서도 고장은 나지 않는 단순한 제품을 바라는 요구가 많았다. 다양한 기능이나 첨단 기술력이 수반된 고가의 제품을 원하는 곳은 극히 일부분인 대형 업체뿐이었다. 유봉규 대표는 이점에 착안해 맞춤형 제책기를 만들어 제공했다. 다양한 기능은 없지만 가격이 저렴했고, 단순한 구조로 제작해 잔고장이 적다는 것이 두레기계의 장점이었다. 또한 하자 발생시에는 발빠른 A/S로 고객 불편을 최소화했다. 영세한 업체가 영세한 업체들을 위한 맞춤형 장비를 생산한 것이다.
싸고 질 좋은 제품? 진짜로 있다
소비자들은 값싸고 질 좋은 제품을 원한다. 하지만 현실에서 찾기란 그리 쉬운일이 아니다. 공급자 입장에서나 소비자 입장에서나 합당한 금액을 찾으려 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유봉규 대표는 싸고 질 좋은 제품이 분명 존재한다고 역설했다. 이에 따르면 “작업처리과정을 단순화하고 필요한 기능만 있는 제품이 싸고 질 좋은 제품”이라고 한다. 원하는 기능만 탑재된 단순한 제품이라면 필요 없는 기능이 배재된 만큼 가격적인 면에서도 우위를 점할 수 있고 고장은 오히려 줄어들 것이라는 설명이다. 디지털시대를 살고 있고 최첨단 기술이 한순간에 고전적인 기술로 전락하지만 특정 기능만을 원하는 수요는 분명히 존재한다는 지론이다. 다양한 업무를 동시다발적으로 수행할 수 있는 규모의 업체들이 그리 많지 않다는 국내시장 여건도 주장에 설득력을 더했다.
시장에 큰 반향을 일으킨 것은 아니었지만 유봉규 대표의 이러한 소신은 국내시장에서 꾸준한 수요를 만들어 냈다. 두레기계 제품의 안정성은 조금씩 고객사들로부터 인지도를 높였다. 30여년 경력의 엔지니어가 고집스럽게 만든 제품의 실체는 화려하지는 않았을지는 몰라도 꾸준하고 오래갔다. 조금씩 쌓아나간 명성은 일본 요시노사 제본기의 총판을 맡고 있는 삼화양행의 귀에까지 들어갔다. 그리고 삼화양행의 정해상 대표는 유봉규 대표에게 요시노사의 제품을 직접 제작할 수 있는지 여부를 타진하기에 이른다.
6년의 두드림 끝에 쌓인 신뢰
근근하게 두레기계를 운영해 오던 유봉규 대표에게 이같은 제안은 사막에서 오아시스를 찾은 것 이상의 희망을 안겨줬다. 삼화양행은 일본 요시노사의 무선제본 라인, 산코의 중철기를 비롯해 나가이사의 재단기, 히타치사의 PCB나 산업용 접착제까지 장비업계에 큰 비중을 차지하고 있는 기업이다. 요시노사의 경우 세계 제본기 시장의 막강한 점유율을 가진 글로벌 브랜드이기도 하다.
조그마한 두레기계가 이들과 손잡을 수 있다는 것은 향후 급속한 성장을 할 수 있다는 발판이 마련된다는 뜻이기도 하다. 영세성을 벗어나지 못하던 두레기계에 있어서는 당당한 기업으로 올라설 수 있는 기회이기도 했다. 유봉규 대표는 “하늘의 별을 딴 것 같았다”는 말로 당시의 기쁨을 표현했다. 요시노와 손을 잡고 제품을 생산하려 시도했지만 이 역시 쉽지는 않았다. 국내 여건보다 훨씬 더 까다로운 일본의 제품기준과 이보다 더 꼼꼼한 요시노의 제품 검증기준을 만족시켜야 했기 때문이다. 수십년을 엔지니어로 살아온 유봉규 대표에게도 요시노의 검증기준은 예상치도 못할 정도의 난관이었다. 생각하지도 못했던 어려움이 곳곳에서 발생했으며, 이를 충족시키기 위해 일본에 위치한 요시노 본사를 수시로 왕래할 수밖에 없었다. 자존심이 상할 수도 있었고 그동안의 경력을 무시당한다는 느낌을 받을 수도 있었다. 그러나 유봉규 대표는 천재일우의 기회를 놓칠 수 없었다. 모르면 물었고 이해가 안가도 물었다. 그래도 안 되면 직접 만들어 설명을 요구하기도 했다.
물론 요시노 측에서는 노하우이자 기업비밀일 수도 있는 사안을 쉽게 가르쳐 줄 턱이 없었다. 무엇이 기준에 적합하지 않은지에 대한 지적을 해 줬을뿐 핵심기술 역량을 알려주지는 않았다. 그럼에도 유봉규 대표는 요시노의 기준에 맞는 제품을 생산하기 위해 부딪히고 또 부딪혔다. 제책기의 조립과정은 두레기계가 담당했으나 요시노의 기준에 맞는 새로운 제품을 도입하기에는 어려움이 따랐다. 이 과정에서 소요된 시간만 무려 6년에 달했다. 6년여의 가간동안 유 대표는 새로운 제품을 만들고 시험했으며 요시노로부터 피드백을 받았다.
이 정도의 노력을 보이자 드디어 요시노도 마음의 문을 열기 시작했다. 유봉규대표의 기술력, 아니 두레기계의 기술력이 한층 성장했다는 면도 있지만 요시노라는 글로벌 브랜드로부터 인정을 받은 것은 기술에 대한 열정이었을 가능성이 더욱 크다. 이제 요시노측은 직접 직원을 파견해 함께 제품을 조립하게 함은 물론 적절한 기술은 어깨너머로 습득할 수 있도록 베테랑 기술진의 작업을 함께 하도록 배려하기도 했다. 그 결과 두레기계는 요시노 제본기의 제책기 부분을 생산하는 당당한 파트너로서의 입지를 굳히게 됐다.
신뢰로 쌓은 탑은 무너지지 않는다
KDY의 탄생 비화
두레기계가 6년간 요시노의 제품을 제작했다 하더라도 진정한 파트너라 말하기에는 부족함이 있었다. 주문제작에 머무른 경우가 많았고 국내 총판권을 가지고 있는 것도 아니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올해 초 당당한 파트너사가 되기 위한 결정적인 계기가 생겼다. 외부적인 요인이었지만 두레기계에는 절체절명의 위기가 될 수도 있었던 사안이 전화위복이 돼 더욱 굳건한 파트너십으로 자리 잡은 사건이었다.
시작은 두레기계의 경쟁업체가 요시노의 제품을 국내에 공급하려 시도한 것이었다. 두레기계와 공생관계이자 경쟁관계이기도 했던 이 업체는 두례기계의 기존 거래처에 파격적인 규모의 제안을 넣어 요시노의 제품을 공급하고자 했다. 만약 요시노가 이를 받아들였다면 두레기계와 유봉규 대표의 6년간의 노력은 물거품이 될 수도 있었다. 시장의 주도권을 빼앗길 경우 뒤쳐진 업체가 선두 업체를 따라잡기는 결코 쉽지 않기 때문이다. 그러나 요시노는 유봉규 대표와의 신의를 지켰다. 해당 업체의 계약을 거부함과 동시에 한국에서 요시노의 파트너는 두레기계 외에는 없다는 공문을 보낼 정도의 강한 신뢰를 보였다.
이를 계기로 유봉규 대표는 요시노와의 결속을 더욱 굳건히 하게 됐다. 오랜기간 사용해 왔던 두레기계라는 사명도 KDY로 바꿨다. 이는 Korea Doorae Yoshino의 약자로 한국과 두레, 요시노의 명칭을 동시에 사용함으로써 국내에서 요시노의 파트너는 두레기계라는 것을 강조한 것이다. 요시노 측도 흔쾌히 허락했다. 현재 KDY는 요시노가 한국에 공급하는 제본기 라인 중 제책기를 독점적으로 제작하고 있으며, KDY 자체 브랜드를 활용한 독자적인 영업도 하고 있다. 대기업의 횡포가 만연한 국내시장 현실과 비교하면 파격적인 혜택이다. 위기가 기회로 바뀌는 새옹지마의 현대판이라고도 할 수 있다.
위기 넘어 잡은 기회 확고한 성장동력 만들 것
앞으로 KDY는 특화된 제품 경쟁력을 더욱 강화해 나갈 계획이다. 첨단 기술력이 수반된 고가의 제품보다는 시장이 원하는 제품을 만들겠다는 뜻이다. 철저하게 사용자 입장을 고려하겠다는 것으로 중소기업 맞춤식 전략을 강화하겠다는 의도로 풀이된다. 올 해 하반기에 선보일 예정인 업그레이드 모델 Y-200 역시 기존 Y-100에서 편의성을 강조했으며 가격인상도 없을 것이라 못 박았다. 하지만 편의성과 안정성, 효율성을 강화하겠다는 의도는 변함이 없다. 눈앞의 수익보다는 국내시장을 넘어 해외시장으로 영역을 넓히겠다는 비전을 가지고 있기에 가능한 선택이며 요시노라는 든든한 지원군이 존재하기에 가능한 전략이기도 하다. 두레기계에서 재탄생한 KDY는 위기를 기회로 삼아 국내시장 점유율 확보를 본격화 할 예정이며 이를 발판으로 해외시장 진출에도 박차를 가할 계획이다. 유봉규 대표는 “6년여의 지속적인 노력이 이제야 빛을 보는 것 같다. 어렵게 찾아온 기회를 반드시 살리겠다.”는 확고한 의지를 밝혔다.
유봉규 대표는 사실 영업에 특화된 성격을 가진 인물은 아니다. 첫 인상에도 원칙을 고수할 것 같다는 느낌, 옳고 그름이 확실한 성격일 것 같다는 느낌이 강했다. 수십년 동안 엔지니어의 한길을 걸어왔기 때문일까? 제작기술에 대한 자부심은 온 몸에서 우러나오는 듯 했다. 이 같은 성격은 기술자로서는 최고일 수 있다. 하지만 경영적인 면, 특히 상대에 따른 협상이나 조율이 필요한 영업적인 면에서는 그리 적합하다고 할 수 없다. 엔지니어로서 강조하는 정확도와 적확도가 영업차원에 적용되면 양보 따위는 전혀 기대할 수 없는 외골수라 인식될 가능성이 농후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유봉규 대표는 이러한 외골수적인 면을 십분 발휘해 오히려 장점으로 승화시켰다. 기술에 대한 갈망과 적극성을 가지고 끊임없이 요시노의 문을 연 결과 보다 확실한 입지를 다졌기 때문이다. 기술장인이라고도 표현할 수 있는 유봉규 대표가 만들어 내는 제책기 기술이 어디까지 특화될 수 있을지, 또한 KDY의 제책기가 국내시장 및 세계시장에 어느 정도 영향력을 발휘 할 수 있을지 기대되는 요소다.
<출처 월간PT>
※ 출처 : EngNews (산업포탈 여기에) - KDY는 꾸준한 열정이 빚은 신뢰의 상징'산업뉴스' 카테고리의 다른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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