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업포털여기에

시대에 밀렸던 미래형 데이터 처리 개념
광통신 시대 맞아 각광받는 기술로 등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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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씬 클라이언트’라는 말을 기억하는 사람이 있을까?
지금부터 20여 년 전 Windows 95가 발매되고 얼마 지나지 않았을 때
Sun Micro systems의 스캇 맥닐리 및 오라클(Oracle)의 래리 엘리슨은 Microsoft와 Intel의
동맹에 대해 반기를 들면서 씬 클라이언트라는 키워드를 공동으로 내세웠다.
글 | 일본 인쇄계 정리 | 월간 PT 편집부(printingtrend@gmail.com)

 

씬 클라이언트의 개념은 유저의 데이터를 서버측에서 관리하는 것이다. 유저의 손에 있는 단말기를 활용하는 개념으로 데이터 처리가 쉽지 않은 즉, 부하가 큰 데이터는 네트워크 상의 서버가 처리하게 한다는 것이다. 이 사상이 완전한 형태로 성립되면 유저는 강력한 CPU와 큰 스토리지를 갖춘 퍼스널 컴퓨터를 구입할 필요가 없어지게 된다. 유저는 서버측에서 보내온 데이터를 표시할 수 있는 단말기만 있으면 모든 처리를 서버를 통해 할 수 있다. 큰 용량이 필요한 새로운 어플리케이션이 있더라도 유저측은 단말기 교체없이 서버측의 업그레이드를 통해 해당 기능을 사용할 수 있다는 뜻이다. 데이터의 축적을 위한 저장장치를 추가할 필요도 없다. 퍼스널 컴퓨터는 인터넷 브라우저를 사용할 수 있는 CPU만 있으면 될 뿐 그 이상의 사양은 필요 없다는 것이 씬클라이언트파의 생각이었다. 호스트 컴퓨터에 연결된 단말기의 개념을 인터넷으로 학대하고자 한 것이다.


이 생각에 대해 맹렬한 비판을 한 사람은 당연히 Wintel 진영의 빌게이츠였다.빌게이츠파의 반론 중에는 씬 클라이언트파가 해명하기 힘든 논점이 있었다.
첫째는 당시 일반 유저의 네트워크가 느리다는 점이었다. Windows 95가 등장한 당시, 퍼스널 컴퓨터의 통신수단은 음성통화용 전화회선을 이용한 다이얼업 접속 시대였고, 모뎀도 당시는 겨우 28.8kbps가 막 보급이 시작된 정도였다. 최대속도도 56kbps에 불과했다. 이후 구리선 디지털회선망을 사용한 ISDN이 보급됐는데 1가닥의 처리량이 64kbps인 구리선을 두 가닥으로 겹쳐 128kbps까지 향상시키는 것이 한계였다. 화상 등을 포함하는 Web 페이지를 사용하기에 용이하다고 말하기는 힘들었다. 브로드밴드라고 불리는 접속환경은 2001년 Yahoo! BB가 보급시킨 ADSL이 확산 된 이후다. ADSL시대에가 도래해 인터넷 서핑의 고통은 겨우 사라졌지만, 씬 클라이언트 사상을 실현하기에는 아직도 속도가 부족했다. 광섬유 접속 및 LTE 시대를 기다려야만 했다. 씬 클라이언트를 실현할 수 있을 때까지 가장 큰 문제점은 무엇보다 통신속도였다.

 

둘째로 Wintel 진영이 지적한 점은 네트워크 비용이었다. 다이얼업 접속 시대의 인터넷 통신요금은 종량제였다. NIFTY과 같은 사업자에 의해 심야시간대는 정액으로 낮시간에는 종량제로 과금하는 제도도 있었는데, 전화회선을 사용하는 이상 인터넷 접속요금이 정액이더라도 전화요금은 별도로 과금 됐다.
길게 접속하고 있으면 요금이 자꾸 올라가는 방식으로 요즘 해외 데이터 로밍으로 요금폭탄을 맞는 것과 같은 일이 당시 일어났다. 때문에 당시 네트서퍼는 데이터를 먼저 다운로드한 뒤 접속을 끊고서 천천히 읽도록 순회하는 소프트웨어를 사용해서 인터넷을 이용했었다. 이와 같은 종량제의 속박을 깬 것도 손정의 씨의 Yahoo! BB가 저가격 정액제 ADSL 서비스를 개시한 뒤부터였다. 이로써 유저는 드디어 안심하고 네트웨크 접속이 가능한 시대를 맞이하게 됐다. 이와 같은 접속이 이루어지지 않으면 씬 클라이언트는 불가능하다.
씬 클라이언트가 꿈꾸는 이상에 도달하기 위해서는 접속사업자간의 격렬한 경쟁이 필요했던 것이다.

 

셋째로 지적된 것은 CPU 처리속도의 고속화였다. Windows 95가 등장한 당시 DOS/V머신(Windows PC를 말함. IBM PC와 그 상호기)은 Intel의 x86CPU를 사용하고 있었다. 현재는 발전형인 64bit 프로세서 x64이 보급돼 있으나 당시의 x86은 1클럭 사이클로 실행하는 명령이 복잡했기 때문에 동작주파수를 상승시키기가 곤란하다고 인식 됐었다. 같은 CISC 동작의 Motorola제68000 CPU를 사용하고 있던 Apple의 Macintoshi가 OS 설계에 크게 곤란함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68000계를 버리고 축소명령으로 동작하는 RISC 동작의 Power PC로 갈아탄 것도 같은 이유 때문이다.

 

하지만 Intel은 CISC의 프레임을 벗어나 RISC 프로세서는 형태로 그 문제를 해결했다. Intel의 CPU는 밖에서는 CISC처럼 보이나 내부에서의 연산은 RISC 방식으로 단순 명령을 처리한다. 이렇게 해서 x86은 4GHz 가까운 클럭 주파수까지 도달하는 것이 가능했다. 유저의 단말기 자체에서 고도의 연산이 가능하게 된 것으로 굳이 네트워크 저편에 데이터를 받아넘겨야 할 이유가 없어지게 된 것이다.
넷째는 DOS/V머신의 급속한 가격저하다. IBM PC용 OS를 개발할 때 IBM과 Microsoft는 IBM PC는 IBM과 Microsoft만이 제품을 판매할 수 있다는 계약을 체결했다. 서드파티의 주변기기 개발을 촉진하기 위해 IBM PC는 오픈 아키텍쳐로서 기술사양을 공개하고 있었는데, 핵심 기술인 BIOS만은 IBM이 개발하고 IBM의 저작권으로 지켜지고 있었다. 이 때문에 IBM은 자신들 외에는 호환되는 기기를 개발하는 존재가 나타나지 않을 것으로 자신하고 있었다.
그러나 IBM의 저작권을 회피하면서 BIOS 개발에 성공한 자가 나타났다. 이들은 Microsoft의 OEM이라고 하면서 IBM PC호환기에 Microsoft의 OS(PCDOS)를 출하 시부터 인스톨해 판매했다. 또한 이들의 존재는 지속적으로 증가하기만 했다. 그 때문에 IBM PC 호환기의 마더보드 등 PC 파츠를 개발 생산하는 제조사도 등장했고 호환기 파츠가격은 급격하게 하락하게 됐다. 유저가 사용하는 단말기의 가격이 점점 떨어지게 되면 교체에 대한 필요성은 점차 줄어들게 되고 오히려 신품을 사는 기쁨이 업그레이드에 대한 만족도를 상회하게 된다. 의도하지는 않았지만 씬 클라이언트를 사용할 필요성이 줄어들게 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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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과 같은 이유 때문에 씬 클라이언트의 환경정비는 간단하지 않았고, 퍼스널컴퓨터의 고속화로 인해 장점이 줄어들었다고 비판받았다. 하지만 빌게이츠 자신은 씬 클라이언트의 아이디어가 위협적이라는 점을 인식하고 있었다.

Netscape Navigator가 씬 클라이언트의 인터페이스로서 미들웨어의 지위를 확립하면 Windows OS의 지배력이 무력화될 것을 걱정했던 것이다. 이 때문에 빌게이츠는 Internet Explorer를 개발. Windows의 디폴트 브라우저로 설정했고 간단하게 타사 브라우저로 갈아타지 못하게 함으로써 Windows의 지배를 강화하고자 했다.

 

Apple이 받아들인 씬 클라이언트
Apple의 스티브 잡스 역시 래리 엘리슨과의 개인적 우정 때문에 씬 클라이언트의 비판자로 인식되지는 않았지만 한 때 씬 클라이언트에 대해 반대하는 입장을 고수 했었다. Apple에 복귀 후 잡스는 iMac의 성공에 이어 2001년 디지털 허브 구상(영상, 화상, 음악, 텍스트 등을 서버에서 퍼스널 컴퓨터를 이용해 가지고 나오려할 때, 퍼스널 컴퓨터에 합법적으로 복사해서 가지고 나온다라는 구상)을 발표해, 퍼스널 컴퓨터를 디지털 라이프 스타일의 중심 디바이스로 정의했다. 이 디지털 허브 구상과 같은 것이 DOS/V머신에서도 실현이 가능하며 Macintosh의 디폴트 브라우저까지도 Internet Explorer로 선정했기에 당시 잡스는 완전히 Microsoft에 졌다고 평가받을 정도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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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스티브 잡스가 씬 클라이언트파로 생각을 변경한 이유는 iPhone 초기의 등장 때 확실해 진다. iPhone의 디지털 허브 구상은 단순히 위에 거론된 Wintel파의 반론처럼 시기상조였다. 그러나 잡스는 Machintosh 플랫폼을 완전히 배제하지는 않았고 응급조치와 같은 수준의 개발에만 머물러 있었다.지금 iOS는 풍부한 네이티브 어플리케이션으로 Android 대비 우위에 서 있지만, iPhone 초호기는 iPhone에 타사제 어플리케이션을 인스톨할 수 없었다.
iPhone용으로는 HTML5로 쓰여진 Web 어플리케이션을 개발하도록 추천권장했다. 이것은 iPhone으로 무엇을 하고 싶으면 서버를 만들고 Safari (iOS 및 Mac OS X의 디폴트 브라우저)에서 동작하는 Web 어플리케이션을 iPhone의 홈화면에 두어야하는 방식이었다. 마치 씬 클라이언트의 개념을 현실화 한것으로 지금 언급되는 클라우드 컴퓨팅이 그것이다.

 

하지만 iPhone 초기 모델이 발매된 2007년 6월의 시점에서 HTML5는 아직구상단계였다. 2008년 1월 22일에 겨우 드래프트가 발표됐고 HTML5가 권고된 것은 스티브 잡스의 사후 정확히 3년 23일 경과한 2014년 10월 28일이었다. 많은 iMac 팬들은 환영했고, 전 세계 Apple Store 및 iPhone 취급 휴대전화회사 직영점 앞의 행렬을 만드는 열기를 보여줬다. 어플리케이션 개발자로부터 불만을 샀던 iPhone 초호기도 서드파티의 네이티브 어플리케이션이 인스톨가능한 사양으로 변경 됐다. Apple의 공식 APP Store가 추가돼 서드파티의 어플리케이션 인스톨이 가능해 진 것은 iPhone 3G부터다. 이후 풍부한 어플리케이션이 iOS의 강점이 된 것은 독자 여러분이 알고 있는 바와 같다. 당시 스티브 잡스는 스스로 죽을 것을 예감하고 서둘러서 진행한 것인지도 모른다.


하지만 Apple이 씬 클라이언트에 대한 생각을 스티브 잡스로부터 계승했다는 것은 Mac OS X 10.10.3 Yosemite에 등장 시 무료 인스톨된 「사진」 어플리케이션 (영어명 Photos)에서 확실하게 보여줬다고 생각한다. 잠깐 여기서 최고의 컴퓨팅 환경을 생각해 보자. Windows 95가 등장했을 때는 고속 네트워크로 연결된 서버와 디바이스 사이에서 데이터를 주고받을 때 큰 용량의 데이터는 서버측에서 실행하는 것도 가능했다. 초고속 광케이블 통신이 존재했으나 광케이블 전용선을 까는 것이 상당한 비용이 들었기에 일반화 되지 못했을 뿐이다. 이 시대의 CPU 주류는 486, 최신 Pentium도 클럭 주파수는 겨우 100MHz에 지나지 않았다. 정지화면의 화상편집도 소비자용 Windows PC에서는 부하가 걸렸다. 때문에 고속 네트워크를 저가격으로 제공하는 사업자가 이 시대에 존재했다면 스캇 맥닐리가 제창하는 형태의 씬 클라이언트도 존재했었을 것이다.

 

하지만 iPhone과 같은 스마트폰도 1.2GHz의 연산 코어를 2개, 4개를 탑재한 CPU 컴퓨터로 짧은 동영상은 iPhone에서 편집해 렌더링까지 단말 내부에서 실시할 수 있다. 마이크로 프로세서의 처리속도는 더 고속화될 테니 서버측에서 화상 및 동영상 편집과 렌더링을 실시하는 것에 의미가 없다. 하지만 무언을 씬(얇게)으로 할지, Apple의 답은 저장장치 였다고 생각한다. Apple의 새로운 ‘사진’어플리케이션은 클라우드를 사용하지 않고 사용하는 것도 가능하지만, 사진 데이터를 클라우드에서 받아 로컬 드라이브에 저장해서 사용하면 ‘사진’ 어플리케이션의 가장 중요한 핵심기능이 돌아가지 않게 된다. ‘사진’ 어플리케이션은 모든 오리지널 화상데이터를 Apple의 서버측 iCloud 포토라이브러리에 저장해 사용하는 것이 본래의 사용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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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같은 iCloud ID으로 로그인해 두는 디바이스면 iPhone으로도 iPad로도 Mac으로도 모두 같은 포토라이브러리를 볼 수 있고, 라이브러리에서 작성한 앨범은 물론 특정 디바이스로 화상을 편집했을 때 편집한 결과를 다른 디바이스에서도 볼 수 있다. 또 이 시스템의 매력으로서 iCloud 포토라이브러리에 저장된 사진은 iPhone에 있는 화상보다 안전하다는 것이다.
고객이 아무리 세세하게 백업을 하고 있더라도 백업 디스크가 오리지널과 같은 장소에 있으면 상당히 취약한 환경에 있다고 할 수 있다. 백업이 있으면 컴퓨터 고장 등의 장해 시에 대응할 수 있지만 화재 및 수해 등의 피해를 받으면백업파일도 무사하지 않다. 하지만 Apple 등 클라우드 서비스를 실시하는 회사는 전세계에 미러링 서버를 가지고 있으므로 한 곳에 대재해가 일어나더라도 데이터가 사라지는 일이 없다. 더욱이 퍼스널 컴퓨팅의 미래를 생각하면 클라우드 저장장치는 필연이지 않은가라고 필자는 생각한다.

 

지금 Apple은 iPhone 및 iPad만이 아니라 Mac의 로컬 저장장치도 SSD화를 진행하고 있다. 말할 것도 없이 비용으로는 하드디스크 쪽이 훨씬 싸고 대용량화 가능하지만 OS 및 어플리케이션 기동이 고속 SSD는 고가이고 용량이 적음에도 불구하고 고객이 지지하고 있다. 현재 로컬 저장장치가 얇아지고 있다. 퍼스널 컴퓨터는 연산에 사용하는 데이터를 일시적으로 기억하는 고속 불러오기가 가능한 DRAM을 메인메모리 (주기억장치)로하고, 시스템 및 어플리케이션, 유저 제작의 데이터 등을 휘발시키지 않고 영속적으로 저장하는 하드디스크를 스토리지(보조기억장치)로서 가지고 있다.
본래는 하나로 뭉쳐져 있는 것이 바람직하지만 불휘발성 기억장치는 불러오기 속도가 너무 느려서 연산속도의 병목이 된다. 때문에 휘발성이지만 고속불러오기 가능한 DRAM을 메인메모리로 하고 있다. 하지만 MRAM(자기저항메모리) 등 불휘발이면서 DRAM과 같은 고속 불러오기가 가능한 메모리가 2006년 제품화돼 조립용도로 사용되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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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MRAM이 퍼스널 컴퓨팅 용도로 이용되기 시작하면 OS 및 어플리케이션은 당연히 MRAM에 인스톨되겠지만 MRAM에 한도 없이 늘어만 가는 유저데이터를 저장하는 것은 MRAM의 비용으로 생각해서 비현실적이다. 그러면 지금까지와 같이 하드디스크에 유저데이터를 저장하는 것이 적당한 것일까? 저자는 Apple이 MRAM 시대의 유저데이터는 모두 클라우드에 두는 것이 이상적이라고 생각하고 있음을 확신한다. 그 최초의 걸음이 「사진」 어플리케이션과 iCloud 포토라이브러리인 것이다.


그런데 최근, Apple Watch가 발매됐다. 씬 클라이언트로 말하면 Apple Watch 정도로 씬한 클라이언트는 없다. 어쨌든 Apple Watch의 기능 대부분은 패어링된 iPhone이 Bluetooth 통신권 내에 없으면 불가능하다. 발매 전에는 iPhone에서 가능한 것을 일부러 Apple Watch를 사서할 실행할 필요가 있을지 등에 대해 비판받았지만, 실제로 구입한 사람은 좋은 인상을 가지는 것같다. 필자에게는 없어서는 안 될 디바이스가 됐다. 아마 앞으로 컴퓨터 환경은 은하와 같이 무수의 혹성계를 가지고, 항성, 그 주변을 도는 혹성, 더욱이 혹성의 주변을 도는 위성과 같이 모든 디바이스가 자립하는 것이 아니라 기능을 쉐어하게 만들어지는 것이 아닐까?

 

<출처 월간PT 2015년 9월>

※ 출처 : EngNews (산업포탈 여기에) - 20년 만에 겨우 만개한 씬 클라이언트(Thin Client)
Posted by NO1여기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