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여년 한우물로 드러난 한글활자의 위대함
류현국 교수, “한글활자 자부심 가질 기회 되길”
한글활자’에 대해서만 20년 가까운 세월동안 연구를 거듭해 온 류현국 일본 쓰쿠바기술대학교수가 기존의 인식을 송두리째 뒤집는 ‘한글활자의 탄생’을 세상에 선보였다.
12년간 전 세계를 다니면서 조사, 연구한 결과를 집대성한 이 책은 한글활자의 원형과 계보를 밝히고 그동안 관심을 받지 못했던 한글활자의 위대함과 아름다움을 표현하고 있다. 정리 | 월간PT 편집부(printingtrend@gmail.com)
한글에 대한 위대함은 국내 뿐 아니라 세계만방에 잘 알려져 있다. 과학적인 표현력과 독특한 아름다움, 그리고 조화로움과 다채로운 유연성 등 한글의 우수성은 대한민국의 자부심으로 자리 잡은 지 오래다. 그러나 이에 못지않은 한글활자에 대한 우수성은 여기에 미치지 못하는 것이 현실이다. 한글활자에 대한 관심은 한글을 직접 사용하고 있는 우리나라에서 조차 일천했다.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목판인쇄물인 무구정광대다라니경을 소유한 나라이자 세계 최초의 금속활자를 만든 인쇄 종주국으로서 아쉬운 부분이 아닐 수 없다. 류현국 교수는 이러한 현실에 통감하고 한글활자의 우수성을 알리고자 한글활자의 역사를 직접 확인하는 오랜 노력을 지속했다. 20여년의 연구를 수행한 결과, 한글활자의 역사와 그에 포함된 한글 문화의 역사, 그리고 세계가 바라본 한글에 대한 관심을 재조명할 수 있었다.
지난 10월 1일 서울 이촌동에 위치한 한글박물관에서는 ‘한글활자와의 만남, 지(知)의 발견 그리고 한글활자의 탄생’이라는 의미있는 강연이 열렸다.
류현국 교수가 집필한 동명의 책을 선보이는 출판기념회임과 동시에 ‘한글활자’가 지나온 뜨거운 관심 속의 역사, 하지만 정작 국내에서는 소외받았던 안타까운 역사를 재조명하는 자리였다. 이 자리에서 류현국 교수는 그동안 왜곡 되고 축소된 한글활자의 우수성, ‘한글활자’가 왜 우리의 관심을 받지 못했었는지에 대한 반성, 바로잡아야 할 한글활자에 대한 인식을 거론하고 이를 통해 한글활자가 발전해 나아가야 할 방향을 제시 했다. 이는 한글창제 반포 시부터 높은 완성도를 보인 인쇄용 한글활자의 우수성을 인식하고 우리 스스로에 대한 자부심을 고취시키며 한글 폰트의 기준을 제시해 세계시장에 당당히 한글활자가 자리매김하기를 바라는 의도가 녹아있는 강연이기도 했다.
그동안 한글활자에 대한 국내 인식은 납활자(연활자)만 3~4종류로 인본에서 만들어져 사용돼 왔다고 알려져 있었다. 류현국 교수에 따르면 “문학·종교사(史)·인쇄사(史)·디자인사(史) 등을 연구해온 학자들 역시 한글활자가 몇 종류 밖에 없다는 학설이 일반적이어서 그렇게만 믿고 있었다”며 “많은 연구자들의 관심이 활자에서 멀어져가고 있다는 인상을 받았고 실제 일제 강점기에는 우리의 근대 활자인쇄가 없었던 것이라 판단, 경술국치 전후 40년 간을 역사에서 지워버리고 싶었다”고 토로했다. 일본의 경우 1990년대부터 근대 활자인쇄사에 관한 연구 결과들이 출간됐고 2010년대에는 1876년 서양인에 의해 일본에서 전수된 ‘전태모형 제작법’과 신식 납화자주조법 등이 산학간의 연구가와 활자 애호가들의 노력을 통해 복원하기에 이르렀다. 한글활자에 대한 관심이 일천했던 우리나라의 현황과는 전혀 다른 행보였다.
일단 한글활자에 관심을 가진 류현국 교수는 “기존 인식에 따라 한글활자 문화가 없어졌다 판단된 시기보다는 한글활자가 활성화 됐을 것이라고 추정되는 19세기 말부터 경술국치 이전까지의 약 30년간 일본과 중국에서 진행된 한글활자 개발에 관한 자료에 중점을 두고 역사적 추적을 시작했다” 고 연구의 계기를 밝혔다. 한국인이 자국의 활자사(史)를 정확하게 정리하지 않는다면 가치관이 전혀 다른 외국인이 연구하는 것에도 한계가 있을 것이라는 우려가 연구의 시작이었다면, 향후 다가올 다양한 첨단화 다양화 될 타이포그래피 시장에서 한글에 대한 위상 및 존재가 왜곡될 수 있다는 두려움이 목표이기도 했다. 한글활자의 원형을 찾아 나서고 과거 한글활자의 변천사를 직접 확인하기 위해 나선 고독한 여정 역시 이 같은 연구의 흐름과 맥을 같이 한다.
발견된 자료를 축적하는 과정에서 알게 된 사실은 놀라웠다. 한글활자에 대한 관심과 제작은 동양에서 뿐만이 아닌 서양에서도 다양하게 이뤄졌다는 것을 확인하게 됐기 때문이다. 오히려 일본이나 중국보다도 한글에 대한 연구는 더욱 체계적으로 활발하게 이뤄졌고 한글활자 역시 다채로운 방식으로 제작됐다. 이는 2차 아편전쟁(1856~1860년)이후 아시아권에서 활약한 선교사들의 연구가 진행됐기 때문이다. 당시 유럽의 선교사들은 쇄국정책을 고수하던 중국의 탄압을 피해 마카오 등에 거점을 마련하고 있었다. 그러나 아편전쟁에서 중국이 패하자 조선으로의 진출로가 확보됐고 조선으로 유입된 선교사들은 자연스레 한글을 접하게 됐다.
한글활자를 만든 서양 선교사들
유럽 선교사들에게 있어 한글의 발견은 경이로움 그 자체였다. 로마자(알파벳) 이외의 문화권이었던 중국 한자에 대한 연구도 다양하게 이뤄졌으나 인접한 국가인 조선이란 나라에서 자체적인 문자를 가지고 있었음에 놀랐다.
또한 한글이 가진 독창성과 체계성, 미적완성도는 물론 간편함 속에 녹아있는 과학성이 그들의 관심을 이끌었다. 선교에 목숨을 걸 정도로 결의에 차 있던 선교사들은 한글에 대한 연구를 시작했다. 선교를 위한 방편이었지만 자체적으로 한글활자를 제작해 책으로 출간했다는 것에 그 의의를 둘 수 있다.
류현국 교수가 전세계를 돌며 발견한 자료에 따르면 한글의 기본적인 체계와 발음이 알파벳으로 표현돼 있으며, 한자와 히라가나를 병기해 이해도를 높이려는 노력도 스며들어 있다. 이는 17세기 후반에 이뤄진 사안들로 근대 한글활자의 문화는 일천했다는 세간의 인식을 뒤집는 것이며 한자와 일본어에 대한 연구보다 더욱 활발한 연구가 이뤄졌다는 면에서 세계인이 보인 한글에 대한 관심도를 유추해 볼 수 있는 대목이다.
물론 가로쓰기에 익숙했던 선교사들의 연구였기에 한글활자 제작이 체계적일 수는 없었다. 당시만 해도 훈민정음이나 훈민정음 혜례본이 발견되기 이전이기에 한글의 체계는 유럽인들의 시각으로 해석될 수밖에 없었다. 초성 중성 종성의 개념을 이해하기에는 한글에 대한 자료가 너무나 빈약했었고 사용되는 한글의 표기 역시 기본적인 것에 불과했다. 무엇보다 한글은 세로쓰기 형태로 진행됐기에 여기에 맞는 활판 및 활자를 제작하기에는 한계가 있었다. 자음과 모음을 따로 제작해 합치는 방식 즉, 훈민정음 26자 각각을 별개의 유닛으로 해석해 조판하는 형식이 초반 활자의 근간을 이뤘다.
사각 틀에 맞춰 제작된 훈민정음 활자와는 상이한 형태이며 가로쓰기에 익숙한 서양의 활판에 맞추기에도 어려운 형태였다. 그럼에도 선교사들은 한글을 세계에 알리기 위한 노력을 지속했고, 자체적으로 해석한 체계를 전파하기도 했다.
글활자, 사각 활자에서 분합 활자로
초창기 한글을 연구하고 그것을 바탕으로 성서 인쇄를 위해 노력했던 선교사들은 전혀 모르는 언어를 배워야 한다는 고통과 함께 그것을 표현하기 위한, 즉 한글을 인쇄하기 위한 활자제작에 엄청난 공을 들여야 했을 것이다.
우리 한글은 알파벳과 달라 글자를 조합하기 위해서는 엄청난 수의 활자를 일일이 만들어야 된다. 지금과 같이 한글을 조합해서 만들었다면 좋았겠지만 한글활자를 만들던 초창기에는 그렇지 못했던 것 같다. 따라서 초창기 한글활자도 한음 한음을 그대로 제작한 사각 활자가 주를 이뤘다.
하지만 한글에 대한 이해가 높이진 이후에는 당시 중국어를 연구했던 결과를 바탕으로 한글을 분해해서 조합 하는 분합 활자를 만들기 시작했다.
이런 분합 활자는 『1868년 프랑스 동양학자 로니의 원도로 제작된 분합 활자가 본문용 활자로 프랑스 왕립인쇄국에서 최초로 제작됐다. 이는 한글 분합 활자가 처음으로 서양 인쇄본에 모습을 나타낸 기록이다. 이후 서양의 활자 견본장에 최초로 소개된 것은 8년 뒤인 1876년 오스트리아의 빈왕립인쇄소가 소유하고 있는 세계의 문자 활자를 게재한 종합견본 ‘세계의 모든 알파벳’에서 볼 수 있다.』
18세기에 들어서는 된소리 쌍자음의 형태로 제작된 한글활자가 등장하기도 했다. 주시경 선생이 체계를 잡은 것으로 알려진 한글 표기방식 역시 선교사들이 자체 해석한 한글 체계의 영향을 받았을 가능성을 배제하지 못한다는 것이 류현국 교수의 해석이다. 이들의 자료를 추적해 발견한 류현국 교수의 공로는 한글활자사(史)의 새로운 견해를 증명하는 업적이라 할 수 있다. 여기에서 중요한 점은 선교사들이 특히 한글에 집중된 관심을 보였다는 것이다. 아니 당시 세계 언어학의 저명한 인사들이 한자나 히라가나보다 한글을 집중해서 연구했다는 점에 있다. 그만큼 한글의 독창성과 우수성, 활용성을 비롯해 아름다움을 증명하는 사안이기 때문이다.
류현국 교수에 따르면 당시 상황을 보면 선교사들의 목적은 천주교를 전파하기 위함 즉 선교를 위한 활동이었다. 천주교를 모르는 사람들에게 하나님의 존재를 알리기 위해서는 그 나라의 언어로 제작된 성경이 반드시 필요했고 이를 위해서는 그 나라 문자에 대한 파악과 활판의 제작은 필수적인 요소였다. 한글활자는 이러한 선교사들의 목적에 의해 홍콩 마카오 등지에서 제작 된 뒤 세계 주요 국가로 전파돼 나갔다. 크리스트교에 대한 탄압이 심했던 아시아 문화권을 감안하면 세계 각지로 연구 결과를 분산시키는 것은 자료에 대한 영속성을 지속하기 위한 효과적인 방법이었다. 한글활자사(史)를 증명한 중요한 기록을 유럽에서 찾을 수 있었던 것 역시 자료의 소실을 방지하기 위한 당시 선교사들의 안배에 따른 것이라 볼 수 있다.
이 외에도 류현국 교소는 ‘세로쓰기 형태로 제작된 한글활자의 특성’, ‘무게
중심에 기반한 한글활자의 아름다움’, ‘가로쓰기 형식으로 전파되며 변화
해 온 한글활자의 변천사’ 등을 거론하며 한글활자의 문화는 세계에서 더
욱 인정받아 왔음을 강조했다. 또한 자부심을 바탕으로 한글활자문화에 대
한 인식을 제고하고 한글활자의 우수성을 계승 발전시켜 나가야 한다고 역
설했다.
류현국 교수는 ‘이용자가 서체 선택의 지침이 되는 한글 서체 견본의 제안’을 통해, 금속활자시대와 달리 디지털 시대에는 이용자 측면에서 명확하고, 다른 서체와 차별화 된 콘셉트를 알기 쉽고, 쉽게 이해할 수 있는 서체 견본의 제작을 위한 기본지침을 제안했다. 제안 내용으로는 선의 굵기, 세로줄기, 가로줄기의 특징, 글자면의 치수, 문자 폭의 공간 크기, 무게중심과 중심선의 위치 마지막으로 부분 자형의 동적 변형 등이다. 이 중에서 흥미로운 것은 무게중심과 중심선의 위치다. 류현국 교수는 『중심 높이와 기울기가 일정하지 않으면 짜인 문장을 읽을 때 눈의 움직임이 상하좌우로 흔들려 눈이 피로해 지기 쉽다. 특히 읽기 쉽고, 보기 좋은 서체는 매 문자의 중심과 균형이 통일되어 있다.』고 밝혔다. 따라서 『라틴어 알파벳과 혼용을 위한 가로조합 전용의 한글 서체에서는 오른쪽에서 왼쪽으로 시선의 흐름을 유도할 경우에 검토할 필요가 있다. 그러나 세로조합을 예정하는 한글 서체의 제작에서는 한글 자형의 구조적 특징인 세로줄기의 위치를 충분히 의식하여 디자인할 필요가 있다.』고 조언했다.
류현국 교수는 한글 서체를 개발하는 디자이너 혹은 타이포그래픽을 담당하는 디자이너에 대한 조언도 잊지 않았다. 류현국 교수는 책을 통해 『세로조판용으로 제작된 서체를 가로조판으로 나열했을 때, 각 자형의 상하 변화가 심하기 때문에 전체적으로 문장의 흐름이 들쑥날쑥하게 되어 버린다. 따라서 현대 서체 디자인에 있어서는 가로 전용과 세로 전용의 둘 중 하나를 선택하여 콘셉트를 명확히 한 후 디자인 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그러나 가로조합용 서체를 디자인하더라도 세로조합용 활자 서체를 분석하고 특징에 관한 지식을 넓히는 것이 가로조합용 서체 제작 시의 난관에 봉착했을 때 디자인상의 해결 능력을 배양할 수 있다. 이에 다양한 활자 서체의 개발로 자형의 변화가 가장 많았고, 현대의 서체 발달과 변화에 직접적으로 영향을 끼친 근대 활자인쇄사를 학습해 정확한 지식을 쌓을 필요가 있다』고 조언했다
발표에 나선 류현국 교수는 “선교사들의 이같은 연구와 노력으로 인해 한글활자의 원형은 물론 변형의 흐름을 알 수 있게 돼 감사하게 생각한다”며 “한글활자는 이미 훈민정음이 반포된 1446년 완성됐다고 보아야 한다. 현대에와서 수많은 변형 활자가 생기기도 하지만 원류와 기준을 알아야 더 나은 발전을 이룰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세계 타이포그래피 시장의 흐름에 대응하기 위해서는 우리 스스로 한글활자에 대한 이해와 자부심이 있어야 할 것으로 보이며 이번 ‘한글활자의 발견’의 출간을 통해 그 기틀이 마련 됐으면 한다”는 바람을 전하기도 했다.
축사에 나선 일본 활자연구의 대가 고미야마 히로시 일본 인쇄활자연구회장은 “류현국 교수의 20년 연구가 빛을 보게 돼 축하드린다. 활자연구에 있어 가장 중요한 것은 실물을 확인하는 것인데 이는 간단해 보이지만 무척 힘든 일이다. 많은 어려움을 극복하고 열심히 연구한 류현국 교수의 노력에 찬사를 보낸다”며 “20년의 연구기간은 오랜 시간이라 생각되지만 실체를 확인하고 증명하는 시기를 감안한다면 무척 빠른 시간이라 할 수 있다. 다른이의 의견이나 허무맹랑한 공상 없이 객관적인 증거를 바탕으로 한국 활자사에 관한 책을 만들어 낸 것은 대단한 일이라 생각한다. 많은 사람이 읽어서 한국의 문화와 역사 그리고 기술을 확인하기 바란다”고 말했다.
또한 한글 연구에 매진해 온 홍윤표 전 연세대 국문학과 교수이자 전 국어학회장은 “류현국 교수를 알게 되기 전까지 활자에 대한 관심은 한글 출판물의 간행연도를 추정하기 위한 방편 정도에 머물러 있었다”고 전제 한 뒤, “류현국 교슈의 논문을 통해 한글활자를 서양에서 연구했던 분야라는 것을 알았다. 그만큼 한글활자에 대해서는 알려진 바도 알고자하는 관심도 없었던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오랜 기간 지속적인 연구를 지속해온 류현국 교수 노력으로 한글활자가 서양에서 활발이 연구 발전 돼 왔고 전파 보급됐다는 것을 알게 알게 됐다. 그 과정 역시 기존의 이론을 종합하고 재편성하는 것이 아닌 자료-이론-실검의 과정을 통해 탄생했다는 것에 경의를 표한다. 이러한 학자가 학자의 귀감이라 생각도며 학자의 혼이 ‘한글활자의 탄생’에 녹아 있다고 생각한다”고 극찬했다.
이어 “이제까지 한글활자에 대한 지식이 없었으나 역사가 밝혀진 만큼 국어학 뿐 아니라 문화차원에서 활자를 바라봐야 한다고 생각한다. 진달래꽃 초안본을 밝혀내는데도 이번 연구는 일정부분 기여할 것이라 본다. 새로운 세계를 볼 수 있게 해준데 대해 감사드린다”며 “또 하나 원고 초안을 봤을 때는 한국어와 일본어의 문체가 상당히 섞여 있던 것이 아쉬웠는데, 최종 출간물을 보니 이러한 부분이 사라져 있었다. 출판사의 노력 역시 상당했던 것으로 보인다. 국어학자로서 고맙게 생각한다”는 감사함을 전했다.
류현국 교수는 “최근에는 디지털 기술과 기기의 급격한 보급으로 컴퓨터상에 다양한 언어가 혼재되어 사용되고 있다. 지금까지 발언권이 없었던 사람들에게도 기회가 주어졌다. 이 기회를 잘 활용할 때 서체는 역사에서 빛을 발할 것”이라며 “서체 디자인은 활자 문화에 영향을 끼치고, 정신적 기둥을 구축한다. 한글 역사의 과거를 바로 알고, 현실을 직시하고, 한글의 보다 나은 미래를 제안할 수 있는 힘의 원천은 대중의 서체에 대한 관심과 비평의 발언, 젊은 연구가들의 등장이다. 이 책이 미약하지만 그 시작점이 되기를 진심으로 기원한다”는 바람으로 강연을 마쳤다.
<출처 월간PT 2015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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